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기차로 블루트레인이 가장 유명합니다. 어느 여행기에서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3대 기차로, 탄자니아 다르에살람에서 잠비아 카리움포시를 잇는 사파리 익스프레스(Safari Express), 나미브 사막을 횡단하는 호화열차 데저트 익스프레스(Desert Express), 그 외에도 마다가스카르 정글 익스프레스(Jungle Express)를 손꼽았습니다. 여행계획을 세우며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열차를 한 번 타려고 하였습니다만 우리 여행기간에는 운행하지 않았습니다. 차선책으로 타자라(Tazara) 사파리 익스프레스를 일정에 넣고 기차표를 예매했습니다.
그런데 타자라 익스프레스는 대중교통수단이라 도착지연이 심하고 40시간이상 타야하고 에어컨이 없는 등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1975년 중국이 아프리카 인민대중을 위해 무료로 건설해준 철도이고 기차도 중국에서 퇴출된 기차라서 더군다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기차표를 끊고도 기차를 포기하고 이틀을 탄자니아에서 더 머문 다음 비행기를 타고 잠비아로 왔습니다. 이래저래 이틀을 더 머물고 비행기 값을 추가하니 3인이 이틀 동안 $3,000을 더 쓰게 되어 주머니가 휑하니 비어갑니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 공항에 도착하니 선진국에 온 듯한 질서와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시원한 초록대지와 깔끔하게 정비된 도로가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살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운전사는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잠비아를 설명하네요. 잠비아의 공용어가 영어인가 하는 나의 질문에 흔쾌히 영어라고 하는군요. 물론 22개의 부족어가 있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스와힐리 문화와 언어를 받아들여 아프리카의 가치를 세우려고 한 탄자니아를 아프리카의 자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영어를 잘 활용하고 영국식 행정시스템을 잘 유지하는 나라가 아프리카의 선진국이고 국민들을 질 높은 삶으로 이끌어주니 말입니다. 물론 잠비아는 광물자원이 많고 이로인해 많은 富가 창출되기도 합니다. 언제나 갖는 딜레마지만 화려한 이론에 비해 현실이 초라하면 사회가 여유를 잃고 궁색하거나 거칠어지기 마련이어서 걱정입니다. 실질적으로 아프리카는 그런 시절을 이미 통과하긴 했습니다. 정신의 혼돈과 박탈감에 야유했던 시절을 지나온 아프리카는 이제 같은 룰로 살기위한 경쟁에 서서히 들어가고 있습니다.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충격이 완화될수록 경제적 가치가 자리잡는 세계적 발전단계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잠비아는 그런 아프리카의 선진국이었습니다. 하여튼 이집트, 이디오피아와 탄자니아를 지나와서인지 문화와 언어 등 내세울게 마땅하지 않아도 깔끔하고 세련된 잠비아가 편하기만 합니다. 어쩜 도시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고 도시적 삶에 익숙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잠비아는 퇴적층의 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잠베지 강이 만들어 놓은 잠베지 분지가 전 국토의 2/3나 되며 그 외에도 북으로는 콩고분지가 있으니 국토의 대부분이 퇴적층입니다. 퇴적층은 미네랄과 무기물이 풍부해 작물이 잘 자랍니다. 또 상류에서 쓸려온 광물질이 차곡차곡 쌓여 오랜 시절이 지나면 거대한 광맥을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에 자원이 많은건 대지의 나이가 많아서라는 데, 잠비아는 아프리카에서도 혜택받은 땅입니다. 지금도 구리, 다이아몬드, 텅스텐 등 비싼 금속이 땅 속에서 나오길 기다립니다.
적도를 지나 아프리카의 중심으로 다가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하나 있습니다. 인종주의라는 비난을 받을까 우려됩니다만 아프리카인들은 이마가 넓다는 것입니다. 이마가 머리 한가운데까지 이어진 사람들도 종종 있고 대부분 우리가 아는 이마보다 두 배의 넓이는 됩니다. 반면 엉덩이는 뒤로 튀어나와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유인원에 한 발 다가간 모습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그런 모습은 더합니다.
그러나 이디오피아나 잔지바르 같이 외지인과 교류가 많은 지역의 여성들은 다른 얼굴, 다른 몸이어서 놀라웠습니다. 더 남으로 내려가 나미비아나 남아공에 이르면 또 다른 아프리카인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요. 말 못하는 저만의 의문점으로 주변을 살피며 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초원의 유목민인 몽골이나 극지의 아이니누족은 과객혼 제도가 있습니다. 일종의 좋은 씨를 외부로부터 받아들여 후세를 튼튼하게 개선하는 제도입니다. 고대 족내혼을 추구했던 왕국은 수명이 얼마 길지도 못했고, 강하게 번창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만큼 외부와의 소통과 혼합은 좋은 결실을 가져옵니다.
16만 년 전 여기에 살던 인류 중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떠난 사람은 아시아인, 유럽인이 되었고 남은 사람들은 아프리카인으로 남았습니다. 16만년이라는 세월은 같은 땅에서 태어났어도 충분히 다른 얼굴 다른 성향의 인간으로 개조될 만한 시간입니다. 흔히 진화는 환경적응의 부산물이라고 합니다. 환경이 변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변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지의 고향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들은 다른 환경을 만났고,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를 개조했을 것입니다.
하얀 얼굴과 까만 얼굴 등, 현재의 차이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생겨난 게 아닐까요? 변함없이 한 곳에 남은 인간은 같은 환경이어서 어쩌면 덜 변화했고 그게 지금 저의 눈엔 한 발 더 유인원에 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듯 합니다.
구대륙으로 불리는 유라시아 대륙은 거대한 민족이동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뒤바뀐 전례가 많습니다. 아리안의 대이동으로 인해 고대사회의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와 인도의 문명이 아리안에 의해 완성되니까요. 흉노의 유럽진출과 게르만아의 남하로 인한 로마의 멸망은 중세의 시작 즉, 게르만의 시대를 열어놓았습니다.
또 흉노부터 시작된 투르크계 유목민의 서천은 중앙아시아, 근 중동, 심지어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투르크의 섬을 만들었고 이슬람의 대변자로 중세를 이끌어갔습니다. 이렇듯 대단위 민족이동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동반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짙은 정글같이 무변의 정체였을까요? 오늘과 같은 어제, 내일과 같은 오늘이 수십만 년 어김없이 동일한 궤적으로 반복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도 대규모의 민족이동이 있었습니다. 바로 ‘반투족’의 대이동입니다. 반투족은 아프리카의 주요 민족으로 중부와 동부, 서부 아프리카를 구성하는 가장 대표적인 민족입니다. 반투족의 민족이동은 기원전 10세기부터 서기 800년까지 무려 1,700년간이나 이어집니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보았듯이 대규모의 민족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대규모 민족이동이라기보다 소규모인 가족단위, 씨족단위로 이어진 이동이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그 동네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서로 공존하고, 다시 새로운 땅을 찾아 이동하는 아주 독특한 민족이동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리안이나, 게르만이나, 흉의 대 이동처럼 전쟁도 피비린내 나는 살육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앞선 농업기술을 가졌습니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는 반투족의 이동과 더불어 농업이 확대되고 수렵에서 정주시대로 바뀌며 부족국가나 소왕국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니 민족이동에 따른 사회변화와 발전은 강도에 차이는 있지만 아프리카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습니다.
반투족은 콩고분지 서쪽 편에 거주했던 민족으로 콩고분지를 거쳐 잠비아-탄자니아-케냐등으로 퍼져나갔고, 남으로는 짐바브웨-남아공까지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따라서 아프리카인의 조상은 반투족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끝까지 하나의 의문점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노예사냥을 한 마사이마라 전사들뿐 아니라, 남의 부족이면 상관 않고 잡아 헐값에 노예상에게 팔아 넘긴 부족들을 볼 때, 또 근대화 이전 아프리카는 먹을 게 부족하면 남의 마을을 습격해 식량과 여자를 빼앗고 노예로 부리는 일이 일상적이었는데, 부족 간의 다툼이 그렇게 많은 아프리카에서 1,700여 년 동안 이어진 민족대이동이 그저 동화와 정착 혹은 교화와 협동 그런 모습으로만 지켜졌을까요?
그러나 저는 아프리카를 믿기로 했습니다. 반투족의 이동은 사랑과 평화의 이동이라고.. 그래서일까요? 반투는 ‘사람’이라는 뜻이랍니다. ‘사람이 왔네.’, ‘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사네.’, ‘그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걸 아네, 신기하다.’ 그렇게 서로 공존하며 평화롭게 정착하고 이주한 역사였습니다. 그러고보니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동안 운전사의 한 첫마디가 생각납니다. 잠비아는 ‘peaceful country’입니다. 한 말을 아프리카는 ‘peaceful country’라고 바꾸어도 되지 않을까요?
아프리카 여행기는 '아프리카, 낯선 행성으로의 여행'(채경석 지음, 계란후라이, 2014)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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