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이 축복이 아닌 저주인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 나라를 꼽으라면 다이아몬드로 전쟁이 끈이지 않는 시에라리온입니다. 또한 석유로 인해 전쟁을 겪으므로 분단 국가가 되거나 국가 분열이 일어난 나라로는 수단, 나이지리아를 꼽게 됩니다.
베네수엘라로 향하며 석유는 베네수엘라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를 생각해봅니다. 자원은 다이아몬드와 석유뿐만 아니라 태양의 열기와 열대우림, 양질의 토양, 우라늄, 희토류와 같은 광물질 등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 속에서 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저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 아닌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세상의 논리로 눈을 돌려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은 항상 일관됩니다. 그런데 자연에게 인간의 색을 입히면 자연은 꿀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베네수엘라에서의 석유는 어떤 존재일까요? 남미에서 유일하게 OPEC(세계 석유 수출 기구)에 가입된 나라이기 때문에 석유와 베네수엘라를 매칭시켜 봅니다. 석유가 저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에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숨겨진 꼼수가 많이 있습니다.
석유로 부를 축적한 나라도 많지만 석유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보다 빈곤하게 사는 나라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종교나 테러 문제로 치부하는 옹졸함을 거두어 낸 나라를 꼽자고 한다면 이라크나 이란, 베네수엘라는 그런 나라 중 하나입니다. 심지어 러시아도 그 울타리에 넣어야만 합니다.
월터 D, 마뇰로는 "라틴 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에서 [대서양의 경제는 자본 축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점차적으로 평가 절하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라고 대서양 경제의 특징을 간략히 정의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명예 혁명으로 경제와 금융 분야에서 변화를 겪었고, 프랑스 혁명으로 법률과 정치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다고 부연하여 설명합니다.
자본을 축적하지 않고 자원 즉, 金이나 銀 등을 축적하려한 스페인이 먼저 경쟁에서 떨어져 나갔고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네덜란드가 떨어져 나가면서 대서양 경제의 중심지는 자본 축적에 성공한 영국, 프랑스가 독주하는 듯 했으나 미국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흐름에 반대한 세력은 하나씩 흡수되거나 배척당하게 됩니다. 세계 1, 2차 대전은 그런 과정이기도 합니다. 세계 대전 결과 독일과 일본은 대서양 경제의 충직한 일원이 되었지만 신생 소련이 세상 물정 모르고 정반대의 세력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드미트리 오를로프는 자신의 저서 "예고된 붕괴"에서 소련 연방의 붕괴 원인을 낮은 유가와 군비 경쟁에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소련은 석유 생산량이 최고도로 달하였을 때 붕괴를 시작했고, 3년이 지나 연방이 붕괴하게 됩니다. 당시 소련의 상황은 유가가 최고조에 올라 석유 이외의 산업은 더욱 취약하게 됩니다. 즉 생산성이 낮은 민간 부분은 높은 환율로 더욱 생산성이 떨어져 소련은 자원 산업 이외 다른 산업은 해외 의존이 더욱 심화됩니다.
반면 타 산업이 위축될수록 소련은 연방 유지를 위해 더욱 더 석유와 가스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갖게 됩니다. 이때쯤 레이건이 시비를 걸어와 군비 경쟁이 시작됩니다. 군비 경쟁은 과당 지출을 유도해 석유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여도 부채가 늘어나는 대외 의존적 경제 구조를 더욱 심화시킵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나는데 소련이 붕괴하기 전 소련의 외채, 군사비 지출은 최고였습니다. 고유가 시기에는 석유를 팔아 해결이 가능했으나, 고유가는 오래가지 않았고 유가가 $20까지 하락하며 소련 연방은 결국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러기까지 고작 3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이야 말로 석유의 저주를 받은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올해도 저유가로 러시아 루블화는 벌써부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작년 초 $120까지 갔던 유가는 $40 선으로 주저 앉았습니다. 푸틴이 $80,000,000,000나 시장에 쏟아 부었건만 루블화는 36루블에서 70루블을 넘어설 만큼 하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90년대 초 소련이 연방 해체를 내어 주었듯이 이번에도 러시아는 무언가를 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석유는 다시 반등하겠죠, 소련 역시 자본 축적이 아닌 자원 축적에 힘을 쏟은 나라의 쓸쓸한 뒷 모습입니다.
그나저나 피해보는 러시아 백성은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까요, 돈이 반값이 되었으니 내 재산도 반, 내 삶의 질도 절반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종이에 인간의 존엄이 결정되니 대서양 경제가 이룩한 세상의 질서가 공평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베네수엘라에 또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한 때 반미의 상징이었던 차베스입니다. 그의 집권 과정은 혁명과 민주의 양면을 띈 특이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송기도님이 지은 "콜롬버스에서 룰라까지"는 차베스의 쿠테타 실패와 선거 혁명, 그리고 역쿠테타를 이겨내고 재집권하기까지의 정치 역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합니다. 송기도님은 이 책에서 베네수엘라를 멕시코, 코스타리카와 함께 군부 쿠테타와 독재의 악순환 없이 정치적 안정을 이룬 남미의 모범 국가라고 말합니다. 그런 모범 국가인데 왜 우리에겐 대표적인 불량 국가로 깊숙이 자리잡고 있을까요, 베네수엘라의 첫 걸음이 걱정되고 설레입니다.
스페인이 오기 전 베네수엘라는 잉카, 마야, 아즈텍의 영향권 밖 원시 부족이 거주하던 외딴 지역이었으며 스페인 식민 시대에도 금과 은이 쏟아져 나온 멕시코나 페루와 달리 카카오,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목축이 주 수입원이었으며 남미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 1920년대 석유가 채굴되면서 유전 국가가 되었습니다.
세계 5위의 원유 보유국, 세계 3위의 원유 수출국이란 명칭이 이를 뒷받침 합니다. 그런데 원유를 수출해도 원유 가격이 뛰어올라도 백성들의 삶은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국민의 70% 이상이 여전히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중산층이 없는 상류층과 극빈층만 존재하는 기이한 사회 구조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소득 분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독과점적 경제 구조의 전형으로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도 으뜸이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부자가 지닌 미덕은 없고 오직 독선만 갖은 졸부의 천박한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차베스를 지지한 어느 페인트공은 베네수엘라 백성이 갖은 박탈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약 당신의 정원에서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난다면 비참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다이아몬드를 캐가면서 집주인에게 빵 한 개를 주고 간다면 집주인의 기분이 어떨까요, 다이아몬드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라면 모를까 다이아몬드로 집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집주인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참을 수 없을 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차베스입니다. 그는 1992년 공수부대의 중령 신분으로 지지자들을 모아 쿠테타를 일으킵니다. 쿠테타는 실패했고 차베스는 체포되었지만 그는 부패한 친미 정권에 저항하는 유일한 인사로 전 국민에게 각인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차베스는 2년간의 옥고를 치루고 출소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1998년 좌파 연합을 이끌어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게 됩니다.
차베스는 56.2%의 지지를 얻으면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차베스는 선거 때 공약한 대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석유 산업의 국유화하고 빈민 구제 사업을 다양하게 펼치면서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게됩니다. 대외적으로 반미의 기수가 되어 브라질의 룰라, 볼리비아의 모예스, 쿠바의 카스트로와 손잡고 반미 동맹을 강화합니다.
차베스는 배짱 좋은 특전사 출신이기도 하지만 1900년대는 냉전이 끝났을 뿐 아니라 무지의 시대가 지나간 뒤여서 차베스의 반미는 그렇게 탄압받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70년대의 남미에서 저지른 공작 정치로 인해 많이 위축된 상황이었지만 그럴지라도 미국의 앞마당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반미를 미국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2002년 차베스를 반대하는 일단의 군부 세력이 쿠테타를 일으켜 차베스는 어딘가에 감금되게 됩니다. 그리고 대통령 하야를 강요받게 됩니다. 차베스에게 감금된 3일간은 호된 시간이었지만 그는 목숨을 걸고 신군부의 압력을 이겨냅니다.
이 때 차베스를 지지하는 하급 장교들이 임시 정부에 반발하며 데모대에 참여하면서 군부는 임시 정부의 지지를 결국 철회하게 됩니다. 차베스는 군중의 힘에 의해 대통령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는 대통령 궁으로 돌아와서는 聲으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그리고 민중의 것은 민중에게"라고 외치며 민중의 지지에 감사함을 표시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차베스의 멋진 모습은 끝이 난 듯 합니다.
이미 세상은 대립의 시대, 혁명의 시대를 지나 화해를 모색하는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즉 일방적인 시대가 아닌, 이해와 존중이 대립보다 비용이 덜 든다는 사실을 깨우쳐가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며 차베스의 반미 노선은 목소리만 컸지 그리 실질적이지 못했습니다. 차베스는 3선에 성공한 대통령입니다.
1기는 민중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아 부패한 과거 정치 청산, 잘못된 산업 구조의 개편 등 할 일이 많았지만 얻는 자가 있으면 잃는 자가 있듯이 민주주의든 독재든 좌우 날개가 있어야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차베스의 정책은 한쪽에게는 심하게 상처주고 한쪽에게는 웃음을 주는 대리만족형 포퓰리즘을 낳았습니다. 2기에 들어서면서 차베스의 정권에도 부패가 만연하고 자신이 부정했던 과거의 단면이 자신의 모습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럴수록 지지자와 반대자의 덩치는 커져가기만 합니다. 가장 편한 정치는 지지자도 반대자도 보이지 않는 무심한 상황이 아닐까요?
차베스는 3선 대통령이 되기 위해 무리한 정책, 눈에 띄는 정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결국 스스로의 명을 재촉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만 "독재가 되지 않으려면 재선을 넘지 않아야한다." 새겨두어야 할 말입니다. 차베스는 결국 3선 대통령이 되었지만 1선보다 2선 때 지지율이 낮았고, 3선에서는 겨우 당선되게 됩니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대통령 선거가 명을 꽤나 많이 단축시켰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차베스와 비교하여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한 번 살펴봐야겠습니다. 룰라 대통령은 초기엔 차베스와 어울려 다녔지만 어느 순간 본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룰라 대통령의 실사구시 정책은 차베스의 선명성에 한참 못 미치지만 백성을 살만하게 만든 것은 훨씬 앞서갑니다. 차베스는 볼리바르 대안이라는 국제 연대를 만들어 달러 교역을 대신하여 물물교환 무역 모델을 추구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필요한 석유를 제공해주고 쿠바로부터 2만 6천여 명의 의사와 교육자를 제공받는 계약으로, 이는 차베스가 사망하기까지 달러 경제권에 맞서 이루어진 실험적 사례입니다. 하지만 차베스가 사망하며 볼리바르 대안은 삐거덕거리게 됩니다. 물물교환에서 화폐 경제로 전환이 모색되고 쿠바가 화폐 경제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경제는 바닥을 치게 됩니다.
그리고 혁명의 상징인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 평의회 의장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정권을 물려받은 라울 카스트로는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게 되고, 교황의 중재로 미국과 협정을 맺음으로써 쿠바의 미래를 바꾸어 놓으려 합니다. 다시금 대서양 경제의 승리이며 이상주의자 차베스와 카스트로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다음은 누가, 어느 나라가 달러 화폐 경제에 싸움을 할까요.
룰라 대통령은 집권 초기 지지층과 새로운 정치의 선명성을 위해 차베스, 카스트로와 자주 무리져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목소리는 낮추고 구세력과 타협해가며 줄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실리적 태도로 바뀌게 됩니다. 그의 여러 정책 중 볼사 파밀리아는 룰라의 색이 가장 잘 나타나는 정책이라고 합니다.
복지를 소비로 생각하는 기존 정치권을 설득하여 이루어낸 성과여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내용은 어린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한 달에 한 아이당 $35씩 부모에게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아이가 많은 빈민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만으로 생계가 꾸려졌고, 아이들은 학교를 다닐 수 있어 아동 노동 착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교육을 받으며 좋은 일자리, 소득이 높은 일에 접근하는 기회도 점차 늘어납니다. 그의 정책에 회의적이었던 구 정치권도 볼사 파밀리아가 거둔 수치의 성과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가 재임하는 기간 동안 볼사 파밀리아 정책의 효과로 빈민층은 27%가 감소되었다고 통계는 보여줍니다. 룰라 대통령이 주장했듯이 복지는 소비가 아닌 투자인 것입니다. 투자는 건물을 짓고, 길을 넓히며 생산력이 높은 상위 집단에 특혜를 주는 것만이 아닌 아래 부분을 끌어올려 소비층을 확대하는 정책도 투자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차베스가 하지 못한 일은 그런 것입니다. 차베스의 1기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개혁을 추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럴수록 차베스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더욱 더 포퓰리즘적으로 변해가며 선명한 정치색을 선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기 때에는 지지층에 대한 정치적 배려와 반미 동맹에 몰입하느라 국가 발전이 뒤쳐졌던 것입니다.
그의 3기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곧바로 사망했으니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끝난 것입니다. 퇴임 시 86%의 지지율을 얻은 세계 최초의 인기 대통령, 미국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대통령"이라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룰라와 달리 소리는 요란한데 별로 일군 것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차베스의 차이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은 성공한 대통령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그런 평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공한 대통령을 갖은 백성은 등 따시고 실패한 대통령을 갖은 백성은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베네수엘라의 첫 날, 새벽 1시에 카라카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가이드로 나온 알레한드로를 따라 호텔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와 $800를 환전했습니다. 공식 환율은 $1=65볼리바르(boivar)인데, 그는 100볼리바르에 바꾸어 주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 40%의 돈은 덧대어져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을 탁자에 쌓아 놓고 물병을 세워보니 물병 높이와 지폐의 높이가 비슷합니다. 8장을 주었을 뿐인데 배낭의 맨 아래층에 꽉 채워질 만큼의 돈이 돌아옵니다.
그만큼이 경제력의 차이는 아닐까요, 차베스는 주변 국가들과 반미 동맹을 굳건히 하려고 석유 무상지원 프로그램을 유지 했습니다. 그리고 수출하여 얻은 돈으로 경쟁력이 있는 기간 산업을 세우지 못하고 지지층을 위해 풀고야 말았습니다. 영원히 달러 화폐 경제로 돌아오지 않으면 모를까 화폐 경제로 돌아오고 보니 백성들의 속쓰림이 더욱 뼈져립니다. 사실 한낱 종이에 불과한 종이도 아닌 전산으로 오고가는 숫자에 불과한 달러 때문에 백성들은 고충을 겪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거부할만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거부한 모든 민족, 나라, 경제권은 모두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대안이 없습니다. 이라크의 후사인은 석유 대금을 달러가 아닌 유로나 기타 화폐로 받겠다고 했다가 부시 대통령에게 호되게 당했습니다. 이란에 이어 이라크마저 그렇게 나온다면 다른 나라들 또한 모두 그렇게 할테고, 그렇게 되다 보면 세계의 달러 수요는 줄어들테니 묵과할 일이 아닙니다.
달러라는 종이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미국이 넘어갈 판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말한 내 편이 되던가 남의 편이 되던가는 이제보니 선한 자의 편도 약한자의 편도 아닌 달러였습니다. 저도 주머니에 남은 달러를 다시 세어봐야겠습니다. 아무리 볼리바르가 많아도 $100의 지폐 한 장이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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