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와나쿠에서 라파스(La Paz)로 향하는 넓은 평야는 3,900~4,100m의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입니다. 라파스로 접근하면 코르디예라 레알 산맥이 펼쳐지고 만년설이 멋진 자태를 뽐냅니다.
웅장한 자태의 와이나포토시, 독수리가 날아오는 형상의 콘도리리와 일리마니까지 6,000m의 산들이 무리지어 나타납니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이들은 뒷동산처럼 친근하기만 합니다. 커다란 흰 모자를 쓰고 있다지만 제가 달리는 고원이 4,100m, 그래봐야 2,000m 더 솟은 아담한 산일뿐입니다.
라파스로 들어가는 입구는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도로와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심한 정체를 보입니다. 약 200만여 명이 거주하는 라파스는 사발 모양의 분지에 들어앉아 기저 면이 좁고 산비탈을 따라 확장했지만 도시로써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또한 도심으로 진입하는 차량들을 제한하고 통행료를 받습니다.
통행료로 인해 입구는 막히지만 이 지점만 통과하면 그 후로는 숨통이 트입니다. 내려가는 길목에 자리한 전망대에 오르면 라파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시내 뒤쪽에는 볼리비아 안데스 줄기인 레알산맥이 펼쳐지고 와이나 포토시와 일리마니가 멋지게 반짝입니다. 라파스가 산의 도시인 것이 실감 나고 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라는 별칭을 가졌는지 쉽게 깨닫습니다.
볼리비아(Bolivia)는 남미에서 가장 신비한 자연을 품은 땅입니다. 역사의 변방 지역이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의 설치물은 별로 없지만 자연이 빚은 창작물은 세상 어느 곳보다 신비롭고 우아합니다. 볼리비아의 여행은 안데스 산맥 사이에 펼쳐진 알티플라노 고원과 안데스를 넘어 셀바(Selba)로 불리는 아마존 늪지 그리고 안데스 트레킹이 있습니다. 볼리비아 여행은 대지와 대지를 가둔 안데스를 넘나들며 저지대와 고지대를 섭렵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동선을 잘 짜주어야 합니다.
저는 볼리비아의 첫 여행의 시작을 와이나 포토시(Huayna Potosi) 트레킹으로 시작합니다. 와이나 포토시는 서울의 북한산과 같은 라파스의 지킴이입니다. 멋진 자태와 접근이 쉬운 근접성까지 두루 갖춘 하얀 백합 같은 산입니다. 새벽의 어둠을 가르고 외곽의 작은 마을들을 여럿 지나 라파스를 벗어나면 한가로운 산길에 들어섭니다.
산길을 약 1시간 30분정도 지나면 광부의 무덤으로 유명한 무덤 군이 나오고 그 아래로 작은 호수들이 듬성듬성 펼쳐집니다. 큰 산의 위엄이 전혀 퇴색되지 않고 온전히 투영되는 마법의 거울처럼 호수에 비친 와이나 포토시는 눈이 쏙 빠질 만큼 우아합니다.
아름다운 산하를 장식하듯 세워져 있지만 사연을 간직한 십자가가 왜 이리 많을까요,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는 볼리비아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볼리비아는 반복되는 쿠데타를 여러번 겪었고 군부가 정권을 오랫동안 쥐락펴락했습니다. 남미의 완전한 혁명을 꿈꿨던 체 게바라의 시각으로 보면 볼리비아는 가장 악랄한 정권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볼리비아는 내부적인 개혁이 반복되며 정치적 발전과 사회 변혁이 끊임없이 진행된 국가였습니다.
차코 전쟁(Chaco, 1932 ~ 1935)에서 파라과이에 패하며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사회에 복귀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이 1, 2차의 세계 대전을 겪으며 세상의 질서에 눈을 뜨며 사회개혁과 독립의 길에 들어섰듯이 볼리비아에서도 전쟁을 통해 보수적인 지배질서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이런 현상은 패배한 사회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납니다.
볼리비아는 전쟁에서 패했고 그 후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합니다. 이때 퇴역 군인을 중심으로 '민족혁명 운동당' (MNR, Movimiento Nacionalista Revolucionario)이 결성되며 이들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면서 볼리비아의 사회개혁과 좌파 정치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1964년에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정권을 잡은 바리엔 토스(Barrientos) 군부는 그의 지지기반으로 협상이 수월한 농민조합을 끌어들였고 공산주의 군사를 지지했던 광산 노동자들을 탄압했습니다. 와이나 포토시에도 주석 광산이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무덤의 주인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정부에 저항했지만 군부는 이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체 게바라는 어땠을까요, 그는 농민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볼리비아의 농민들은 1953년의 토지개혁으로 필요한 토지를 얻었으니 목숨을 걸만한 불만이 없었던 것이 이유입니다. 더불어 농민조합은 바리엔 토스 정권의 파트너였습니다.
농민들과 달리 광산 노동자들이 정권에 끝까지 대항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민들은 토지개혁으로 없었던 땅을 조금이나마 받았지만 광산은 국유화된 뒤에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광산의 주인이 국가로 바뀌었을 뿐 광산 노동자들의 삶은 바뀐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정권에 비협조적인 일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966년 체 게바라는 쿠바를 떠나 새로운 혁명을 꿈꾸며 볼리비아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농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볼리비아 공산당의 뿌리인 광부 조직과도 연대를 맺지 못 합니다. 그는 제 2의 쿠바 혁명을 꿈꾸었지만 1967년 최후를 맞이하며 결국 막을 내립니다. 볼리비아의 정치 역정을 보면 갈등과 투쟁이 쿠데타와 혁명의 방식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반복됩니다.
너무 지나치게 느껴져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변화의 열기가 대단하여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가장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모여 살기 때문일까요, 먹이를 탐색하는 야수적 본능이 쿠데타의 형식을 빌어 빈번한 볼리비아지만 야수가 살기엔 너무 높아 볼리비아의 쿠데타는 하늘과 같은 숭고함이라 믿고 싶습니다.
차량은 와이나 포토시의 베이스캠프(4,800m)라고 쓰인 산장 앞에 정차합니다. 와이나 포토시는 이곳에서 부터 시작입니다. 천천히 몸을 추스르고 트레킹을 시작하면 완만한 오르막길이 약 30분간 이어지고 넓은 고원을 다시 30분간 걷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파른 빙하 퇴석 지대에 오르다보면 그 끝 지점에 ABC(Advanced Base Camp, 5,130m) 등반 전진 캠프가 있습니다.
5,000m 지점에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이 5,000m를 힘겹게 오른 등반자들을 환영해줍니다. 베이스캠프와 ABC에는 등반자들이 묵을 수 있는 다인실 숙소가 있습니다. 이곳은 경험 있은 등반자들 뿐만 아니라 고산 등반 경험이 전무한 젊은 여행자들도 스스로의 용기와 모험을 즐기려 등반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현지 전문 여행사에서 가이드는 물론 식사, 전문 등산화와 방풍 재킷까지 대여해주니 긴 여행 중에 무리한 등반을 한 번쯤은 도전해볼 만 합니다. 보통 라파스에서 출발해 3~4일간 이루어지는 등반 첫날은 BC에서 고도 적응을 하고 둘째 날은 ABC까지 올라왔다 BC로 고도 적응을 하며 하산합니다. 셋째 날에는 ABC에 올라가 하루 묵고 다음날 새벽 4시경 출발하여 약 6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고 정상에 오름으로써 그날로 ABC, BC를 거쳐 라파스까지 돌아옵니다.
와이나 포토시는 라파스에서 약 2시간이면 닿는 거리입니다. 높이 6,000m가 넘는 고봉 등반을 아주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높이 4,800m의 베이스캠프에서 한 장, 5,000m 지점에서 한 장, 다시 5,130m의 ABC에서 한 장을 남기고 라파스로 돌아오니 아직 해는 중천인 오후 4시입니다. 오늘의 트레킹을 정리해보니 차를 타고 오가는 시간 약 4시간, 점심 식사 시간 약 1시간, 트레킹은 약 5시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볼리바이의 두 번째 여행은 아마존입니다. 아마존은 안데스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안데스가 융기하기 전 강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흘렀습니다. 당시는 지금의 지형과 달리 동쪽이 높고 페루, 볼리비아는 저지대였습니다.
그러다 안데스가 융기하면서 태평양으로 흐르던 강물이 산맥에 막혔고 저지대를 따라 넓게 확장됩니다. 그러나 물은 산을 넘지 못하니 고인 물이 역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기까지 꽤나 많은 물이 산맥을 따라 퍼져나가면서 주변이 물에 잠기게 됩니다. 바로 아마존의 탄생입니다.
아마존은 안데스 줄기를 따라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이유는 역류한 물이 만든 선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존의 상류는 거대한 늪지 즉, 셀바가 펼쳐집니다. 셀바는 생명체의 보고이며, 풍부한 물과 햇빛이 만들어낸 정글은 지구 산소의 약 20%를 생산하는 산소 공장입니다.
아마존을 보존하고 지켜주는 것은 지구촌의 미래와 집결됩니다. 아마존의 수역은 약 700만 평방킬로미터로 아프리카 콩고 강 수역의 2배에 달합니다. 우리나라가 약 10만 평방킬로미터가 좀 안되니 무려 우리나라의 약 700배가 넘는 면적인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면적이라 간과하기 쉽지만 아마존은 현재 왕성한 개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특히 중류와 하류는 농지 개발로 지난 20년 동안 브라질에서만 프랑스 면적에 해당되는 열대 우림이 사라졌으며 브라질 환경청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도 매년 0.5%의 열대 우림이 각종 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말합니다. 어떤 통계에서는 이미 1/8의 열대 우림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EBS Media에서 발간한 '멸종'에서는 반복되는 생명체 멸종의 주원인이 산소 농도의 감소라 지적합니다. 또한 지진이나 화산 분화, 쓰나미로는 약 70억 인구의 95%가 사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합니다. 하지만 산소의 감소로 인해 생태계가 변한다면 95%의 멸종이 가능합니다.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는 메마른 지구의 미래를 버리고 인류가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의 인류는 새로운 행성을 찾았습니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날까요? 아마존을 잃는 것은 산소를 잃는 것이고 산소를 잃으면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온실 효과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대지는 메말라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 될 것입니다.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병행하는 산소의 감소는 산소에 민감한 해양 생명체의 멸종을 야기하며 해양 생명체와의 먹이사슬인 육상 생태계도 교란이 일어나 끝내 그 변화의 종국은 최 상위 포식자인 인간들도 멸종의 단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각인해야겠습니다. 아마존을 지키는 것이 지구촌의 미래라는 것을.
볼리비아의 아마존 여행은 루레나바께(Rurrenabaque)에서 시작됩니다. 비행기를 타고 안데스를 넘어 아마존의 개발 도시 루레나바께에 도착하면 라파스의 뜨거운 햇살 대신 눅눅한 햇살이, 상큼한 공기 대신 축축한 공기가 피부를 적십니다. 아마존을 향해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다시 보트로 물살을 가르면 마치 구렁이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아마존에 다다릅니다.
8자를 그리며 굽이치는 강의 파형과 광대한 숲을 가르며 굽이치는 물줄기의 곡선이 스륵스륵 숲 속으로 사라지는 구렁이 같기만 합니다. 아마존의 이런 모습은 어디에나 있지 않습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만의 특화된 모습입니다.
페루 지리학회의 발표에 의하면 아마존 강은 나일 강을 제치고 지구상에서 가장 긴 강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 첫 물방울의 시작은 페루 안데스의 네바도 미스미 산(Mt. Nevado Mismi, 5,597m)입니다. 페루 지리학회가 주장하기 전까지는 나일 강이 가장 긴 강이었지만 현재까지도 누군가는 나일 강이 가장 길다고 하니 정설만이 다는 아닌 듯합니다. 아마존 여행은 일찍이 브라질의 마나우스(Manaus)와 페루의 도시 이키토스의 푸에르토말도나도(Puerto Maldonado)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페루에서 아마존이 끝나는 지점인 브라질의 항구까지는 넓은 물길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현재도 페루의 이키토스에서 브라질의 마나우스까지 정기 페리가 운항됩니다. 10일 동안 이어지는 아마존 페리 여행을 생각하다 보면 이 길을 세계 최초로 탐험한 어떤 남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1968년대 일본의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는 아마존이 시작되는 페루에서 아마존이 끝나는 브라질의 해안까지 약 6,000km를 60일간 홀로 뗏목 탐험에 나섰습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집착은 그의 삶을 지배하는 요인이었습니다. 일본인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자이면서 수직뿐만 아니라 수평적 탐험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북극권 약 12,000km 개썰매 횡단, 북극점 도보 도달, 그린란드 횡단, 세계 최초 5대륙 최고봉 등정, 그는 대부분을 혼자서 이룩했습니다.
대규모의 원정대도 없이 혼자서 준비하고 실행한 철저하게 고독한 인물입니다. 그의 마지막 산행이 된 동계 매킨리 산(Mt. Mckinley) 등반 또한 단독 등반이었습니다. 그는 무사히 정상에 올랐으나 하산 도중 눈보라를 만났고 산에서 그렇게 생을 마감합니다. 탐사대가 그의 시신을 찾으려 했지만 그는 영웅답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을 설레게 했던 '네 청춘 산에 걸고'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그는 소심하고 평범한 남자입니다.
인생의 전환점은 메이지대학교 산악부에 들어가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선택은 그의 인생의 행로를 결정짓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단돈 $50 만을 가지고 미국으로 떠난 산악인이자 탐험가로서의 삶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그는 농장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고 자신만의 등반에 나서게 됩니다.
해외 등반대에 참여하며 착실히 경험과 능력을 쌓아가던 일본의 산악인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이 계획하고 꿈꾼 산행과 탐험에 몰입했으며 그렇게 몇 년을 보냅니다. 그가 일본 산악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본격적인 행보는 여러 등반 이력이 아닌 아마존 탐험이었습니다.
일본 산악인들은 우에무라 나오미를 그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만 생각했고 뛰어난 산악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명치유신 100주년 에베레스트 등반대에 선발된 우에무라 나오미는 헌신적이었고 영광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던 나오미는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설원에 주저앉아 한참을 기다립니다.
그가 기다린 것은 같이 오르던 동료였습니다. "나오미 왜 정상에 올라가지 않고 있어?" "당신은 지난 3년간 이 등반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습니다. 정상은 당신이 먼저 올라가야 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손을 잡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첫 등정의 영광을 바라는 산악인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명예와 영광을 오르는 것입니다.
이런 예시가 또 있습니다. 세상의 논객들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어 수차례나 에드먼트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누가 먼저 올라갔습니까?" 하지만 둘의 대답은 죽기 전까지 항상 똑같았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같이 올랐습니다." 나오미는 등반했는지가 아닌 어떻게 등반했는지를 따집니다. 등반에 있어 대상이 아닌 행위가 중심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우에무라 나오미는 에베레스트 등반이 끝나고 깊은 자괴감에 빠집니다.
한 명의 등정자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등반을 하지 못하고 지원 해야 하는 불합리함,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 산을 통해 명성과 영광을 얻으려는 세속적이고 물리적인 한계, 그러한 이유로 그는 에베레스트 등반 이후 단독 등반, 단독 탐험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자유를 찾아 떠나는 본래의 이상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존에서 우에무라 나오미를 생각하니 여행에서 자유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자유롭기 위해 떠났지만 지금 저는 자유로운 것일까요,
짧은 시간동안 아마존을 체험하려면 시설이 불편하더라도 볼리비아 아마존이 더욱 원시적인 태초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아마존에서의 여행은 자연 체험입니다. 낮 시간에는 아마존에서만 서식한다는 핑크 돌고래를 찾아갑니다. 핑크 돌고래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은지 방문객들을 피하지 않고 수중 댄싱을 즐깁니다.
밤 시간에는 카이만이라 불리는 아마존의 작은 악어를 찾아갑니다. 팔뚝만 한 큰 물고기 크기인 카이만은 애완용 악어에 가깝습니다. 불빛에 현혹돼 모여드는 악어를 보트맨은 날쌔게 낚아채서 배를 뒤집어 보여주지만 배를 뒤집었다고 해도 날카로운 이빨을 보니 악어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손가락이라도 물리면 잘려나갈 것 같아 겁이 납니다.
또한 이곳에선 12월에 모기가 기승을 부린다고 합니다. 번식 시기인가 봅니다. 반면 1월의 모기는 힘없는 하루살이 같습니다. 이미 번식기가 끝나 왕성하게 피를 필요로 하지 않는지 물어도 별로 가렵지 않고 툭툭 털면 힘없이 떨어져 나갑니다. 때문에 서울에서 가져온 모기장 자켓과 사파리 모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마존에는 말라리아균이 없습니다. 그러니 황열병 예방 주사만 맞으면 문제없습니다. 아프리카와 같이 말라리아 약을 먹지 않아도 되니 이래저래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입니다. 루레나바께는 페루의 푸에르트말도나도나 이키토스, 브라질의 마나우스 보다 개발이 덜 되어 자연 상태가 좋은 반면 시설이 떨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여행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편안하게 아마존의 뒷모습을 보는 것과 조금은 불편해도 아마존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의 불편을 참을 수만 있다면 루레나바께는 아주 괜찮은 아마존의 여행지입니다.
아마존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여성 부족 아마조네스에서 유래합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마조네스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요정 하르모니아의 자손들로 여성들로만 왕국을 이루었으며 종족 보존을 위해 이웃 부족을 침입해 남자들을 겁탈한 뒤 태어난 아기는 여자만 거두었고 남자 아기는 죽이거나 이웃 나라로 보냈습니다.
이들은 전쟁을 가장 즐겼는데 태어난 여자 아기들은 활과 창을 잘 다룰 수 있도록 오른쪽 유방을 도려내고 키웠다고 합니다. 헤로도토스는 아마조네스가 사르마트족의 스키타이 국경 지역(현재의 우크라이나)에 위치한다고 말합니다. 신화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헤라클레스에게 맡겨진 일 중 하나가 아마조네스족의 여왕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빼앗아오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헤라클레스가 그녀들을 이 지역에서 쫓아냈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아마조네스는 남자들이 꽤나 관심 가질만한 대상입니다. 이는 여성들의 왕국이었으며 가보고 싶어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중국의 역사학자 장진 꿰이는 '흉노 제국사'에서 더욱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흉노에 밀려 서천(逝川)한 스키타이인들은 아마존 부족의 저항을 받았는데 그들은 활을 쏘기 위해 오른쪽 유방을 절개해 오른쪽 유방이 없는 여자 전사였다고 합니다.
스키타이는 남자밖에 없었고 아마존은 여자밖에 없어 두 부족은 전쟁을 멈추고 집단 결혼을 했습니다. 여기서 탄생된 부족이 사마르칸트인이라는 설명입니다. 네이버의 역사 다이제스트는 각 분야의 전문 학자들이 일반인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한 기록인데 '러시아 역사의 시작' 편에 사마르칸트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옵니다.
[BC 300년경 강력한 스키타이 국가도 같은 이란계의 사마르칸트인들에게 무너졌다. 이들은 신속히 스키타이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후 남 러시아의 초원 지대를 가로지르는 동서 교역로를 개척했다. 사르마트의 여러 부족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당시의 지도에 종종 나타나는 알란 족이다. 이들은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해 유럽 전역이 로마 군병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을 때에도 그 세력권 밖에 서서 AD 200년경까지 약 500여 년 동안 남 러시아를 지배했다.]
무엇이 사실인지 시간차가 생기니 혼란스럽습니다. 흉이 서천하며 게르만의 이동이 시작되었고 흉의 서천은 한무제 때의 서역 경영에 의해 흉이 분열되면서 일어난 사건이니 BC 2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신화 속 인물이니 배제하더라도 헤로도토스가 실없는 기록을 남겼을 리는 없을 테고 한무제나 흉노의 서천, 스키타이의 활동 역시 존재하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마존 부족의 이야기니만큼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일반적인 사실이 아닌 숨겨진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전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무덤 위에 피어오르는 인(In)이 빛을 밝히면 귀신이 나타났다고 소란을 피우는 일과 같은 해프닝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정신에 촉촉하게 젖어있던 유럽인들은 아마존의 실체를 꽤나 궁금해 했습니다. 그런 유럽인 중 한 사람이었던 스페인의 탐험가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는 현재의 아마존 정글에서 발가벗은 채 활을 당기는 전사를 만났고 그를 아마조네스라고 부른 것에서 아마존이 유래합니다. 헤라클레스에게 쫓겨난 아마조네스는 북코카서스인이 그랬듯이 베링 해를 넘어 아마존에 정착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두 민족이 사는 동네도 카프카즈 산맥 넘어 남북에 살았으니 비슷합니다. 터키나 헝가리, 핀란드 사람들을 보면 몽골 고원의 남쪽 끝자락 북경이 멀지 않은 음산 산맥과 오르도스 초원(Ordos, 현재의 몽골 내 서부)에서 이동해갔다는 추측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여행을 시작해 스카이, 슬라브, 게르만과 통혼을 하며 지금은 알아볼 수 없는 서구인이 되었습니다. 아마조네스가 어느 계통의 민족인지 모르지만 아마존에 자리 잡았다면 몽골 고원을 지나고 만주 벌판을 지나 다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지나며 몽골 계통의 사람들과 수 없이 섞였을 것입니다. 그 결과 아마존의 원주민이 되었다는 가정이 꼭 무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유방을 절개한 여전사가 있었다면…
아마존에서 라파스 공항에 도착하면 가벼운 두통과 고산증세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라파스 호텔을 향해 고도를 낮추어 가면 몸은 훨씬 개운해집니다. 아마존의 끈적거림은 싫지만 알티플라노의 높은 고도 역시 편하지는 않습니다. 라파스가 알티플라노 고원보다 약 400m 낮은 계곡에 자리 잡은 것은 삶의 편안함을 위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파스에서 하루를 보내고 체 게바라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을 떠납니다. 비행기는 다시 안데스를 넘어 아마존을 찾아갑니다. 같은 아마존이지만 루레나바께에서 바예 그란데(Valle Grande)를 연결하는 항공편이 없으니 라파스를 경유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체 게바라는 아마존의 바예 그란데에 근거지를 만들었습니다.
아마존 정글이었지만 당시의 시설을 복구한 바예 그란데 기념관은 병원도 있고 학교와 세탁소도 있는 자립 마을 수준입니다. 하지만 정부군이 토벌을 시작하자 체 게바라가 세운 근거지는 풍비박산이 됩니다. 마치 포르투갈 군의 공격을 받아 초토화되는 과라니족 공동체의 운명과 같습니다.
체 게바라는 정부군의 공격을 받고 추로 계곡(Valle Churro)으로 쫓깁니다. 아마존이 안데스와 만나 급격히 좁아지는 지역에서 체 게바라와 16명의 군사는 전투를 거듭하며 탈출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6명만이 안데스를 넘어 칠레까지 무사히 탈출했을 뿐 대부분은 정부군의 포위를 뚫지 못 하고 사살 당하거나 생포됩니다. 그들 중 체 게바라도 있었습니다. 그는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생포되어 라이게라 마을 초등학교 교실에 감금됩니다.
그는 외면했고 심지어 밀고까지 했건만 마지막을 기억하는 라이게라 마을엔 기념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체 게바라를 버린 마을이 그를 팔아 돈을 벌고 있는 잔인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장 코르미에가 지은 '체 게바라 평전'에는 그의 마지막을 이렇게 그립니다.
'상부의 명령을 받은 하사관 테란은 차분히 앉아있는 체 게바라를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테란은 자신이 임무를 완수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때 체 게바라는 그가 일을 끝낼 수 있도록 격려한다. "쏴! 겁내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 데란은 후에 기자에게 이렇게 증언했다고 합니다. '그의 눈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매혹 당했습니다. 나는 크고 위대한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3일간의 여행으로는 너무나도 바쁜 일정이었습니다. 첫 날 산타크루스에 내려 바예 그란데까지 차로 약 5시간을 달려갔으며 둘째 날은 라이게라까지 약 5시간을 달려야 했습니다. 다음날 라파스로 돌아와야 하니 또다시 약 5시간을 달려 바예 그란데까지 돌아와야 했으므로 체 게바라가 처절하게 쫓겼던 추로 계곡은 발도 딛지 못했습니다.
체 게바라의 마지막을 추적하기에 3일은 너무나도 부족했습니다. 이틀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여행이었지만 체 게바라를 쫓는 여행은 쿠바에 이어 볼리비아에서 아쉽게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체 게바라를 통해 알게 된 질문을 저에게 던져 봅니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Aalbert Camus)-
저는 살만한 가치를 찾은 듯합니다. 아직은 해야 할 인생 여행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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